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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래에 새롭게 도장 찍을 일이 생겼는데 예전에 급하게 별생각없이 만든 인감도장보다 좀 더 좋은 도장을 쓰고싶단 생각이 들었다. 고민 끝에 큰 돈을 들여서 한자 도장을 만들었는데 정말 중요한 일에 귀하게 사용하라고 하셔서 편하게 쓰려고 다른 도장집에서 저렴한 한글 도장을 만들었다. 도장을 만들고 도장집에서 선물로 주신 인주를 써보니 와..세상 촉촉, 폭신하고 선~명하게 잘 찍히고. 집에 있던 오래된 인주(고등학교 졸업할때 받은 도장집 옆에 달려있던;;)는 잘 찍히지도 않고 감촉도 별로였는데.. 덕분에 고급 인주는 어떤건지 찾아보고. 얼마전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던 분야에 대해서 급 관심이 높아져버렸다 ㅋㅋ   

일련의 과정 속에서 예전에 봤던 단편영화 '이름들'이 내내 생각났고 도장을 받아온 날 이 영화를 몇 년만에 다시 봤다. 

도장과 열쇠는 한 몸인가. 도장 만들 생각을 하면서 유심히 거리에 있는 가게를 살펴보니 도장과 열쇠를 함께 취급하는 곳이 많았다. 열쇠는 안 그런데 도장은 저렇게 크게 확대한 빨강색 모형을 둔다. 

별 생각없이 만들면 모를까 큰 맘먹고 도장을 파러 가면 재료뿐만 아니라 어떤 서체를 고를지부터 고민의 시작. 서체를 알아서 잘 해주시는 도장집도 있다. 가게에 따라 천차만별. 이번에 제작하면서 많이 알게 되었다. 심오한 도장의 세계. 

영화 속 주인공은 조현철 배우. 그는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 본명 대신 필명(현철)으로 도장을 판다. 

출판사에서 계약하려고 새로 판 도장을 찍는 중. 사인을 할 때와 도장을 찍을 때는 기분이 다르다. 나도 이번에 만든 도장으로 좋은 일 많이 생겼으면! 

현철은 도장을 파고 쓰던 Contax T3를 중고거래한다. 시인인 그는 수시로 검은색 작은 노트(노트북이 아니라)를 꺼내 시를 쓴다. 현철의 집 대문도 도어락이 아니고 열쇠로 열어야한다. 그러고보니 이 영화는 참 아날로그적이다. 영화가 끝나갈쯤 현철은 소중한 시가 적혀있는 노트를 잃어버리고 누나에게 맞지 않는 열쇠를 받아와 집에 못들어간다. 노트와 열쇠 덕분에 현철은 고통을 맛본다.

영화는 도시인의 일상을 잔잔히 그려내는데 그 묘사가 탁월하다.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. 

저 장면을 보고 티쓰리 요즘 시세(영화에선 55만원)는 어떤가 싶어 찾아보니 ㅎㄷㄷ. 나는 2014년쯤 충무로 중고카메라샵에서 70만원인가 주고 샀는데(중고지만 사용 흔적이 없는 거의 새 제품) 이젠 못살거 같다. 제발 잃어버리지 말고(콘탁스 t2 잃어버림ㅠ) 오래오래 잘 써야지. 

도시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 컷.